이번 포스팅은 '헐리우드의 킹'이라 불리우는 전설의 배우 클라크 게이블(William Clark Gable)이다.
처음 그를 알게된 건,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였다.
레드 버틀러역은 매력덩어리 그 자체였고, 클라크 게이블은 전세계의 여성들의 가슴에 남게된다.
사실 그는 세계에 남은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만나지 못했을 수 도 있었다.
그 당시에도 소녀떼들은 있었는지 그를 출연시켜달라고 팬들의 성화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제작사는 이미 MGM 영화사 소속이었던 그를 수익금의 반을 떼주는 조건으로 빌려와서 겨우 찍게 되었다는 것.
헌데 이미 유명한 스타였던 그가 출연을 거절했었고, 절친한 친구가 그런 그를 보며 조롱한 것에 마음을 고쳐먹었다고한다.
이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스타였고, 자부심 또한 어느 정도 였는지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中 클라크 게이블]
이 포스팅에서 가장 중심으로 다루고 싶은 것은 클라크 게이블의 사랑이다.
워낙에 많은 스캔들의 주인공이었으며, 무려 결혼을 5번이나 한 세기의 카사노바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를 이해해보자.
그는 자기 감정에 충실한 주인이며, 사랑도 일도 주위를 신경쓰지 않고 쟁취해 내는 정복자이다.
1901년에 태어나 7개월만에 어머니를 여읜 그는 이때 부족했던 모정이 그린운 것이었는지 대부분 연상의 여인들과 결혼하고 연애를 했다. 어린시절 안해본 일이 없다 할 만큼 힘들게 지냈으며, 우연히 본 연극무대에 반하여 극단에서 잡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기를 배워나갔다.
그의 첫 부인이자, 그의 연기 선생역까지 도맡은 여인은 '조세핀 딜러'이다.
그보다 무려 14살연상이었고, 그녀를 만났을 때 클라크 게이블의 나이는 21세였다. 파릇파릇한 그를 배우로 키워낸 것 또한 그녀였다. 그녀는 그의 풀네임 윌리엄 클라크 게이블 에서 윌리엄이 배우이름으로 촌스럽다고 이름까지 바꿔주고, 치아 사이가 많이 벌어졌던 못생긴 것을 보고 의치까지 해준 그의 인생을 책임지던 선생이었다.
의치 얘기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의술이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치를 해 넣었던 그에게 헐리우드는 최악의 입냄새배우란 오명을 주었단다. 심지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키스신을 찍던 '비비안 리'는 그의 입냄새 때문에 촬영을 보이콧할 정도였다고 하니 심하긴 했나보다;;
첫번째 부인인 조세핀딜러와의 결혼 생활이 지루해진 그의 두번째 부인은 그를 후원해주던 '마리아 리아'와 두번째 결혼 생활을 한다. 그녀 역시 연상의 여인이었고, 무대를 바꾼 그에게 최고의 후원자로 여러 배역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여인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스타가 된 그는 헐리우드 여러 여인들과 스캔들을 뿌리고 다녔고, 두번째 이혼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제목에 사랑을 먹고 살아간 남자... 라는 수식어를 붙여놓은 까닭은 세번째 부인인 '캐롤 롬바드'란 여인 때문이다.
08년 겨울 우연히 이승현의 시네타운 라디오를 청취하고 있었다.
그 날은 배우의 일생에 대해 얘기해주던 코너였는데, 이 때 주인공이 바로 클라크 게이블이었다. 들으면서 어찌나 가슴을 울리던지 그의 영화같은 사랑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캐롤 롬바드'는 클라크와 연예시절 기자회견때 그와의 잠자리에 대해 깎아내리기도 하였고, 분장실로 저속한 편지와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후 그녀는 대외적으로는 정숙해졌으며 잠자리에서는 그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을 나눈 헐리우드의 최고커플이 되기도 했다.
1942년 1월 16일 유명한 코메디 여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캐롤 롬바드'와 결혼을 한지 3년째 되던 해, 클라크는 둘만을 위한 파티를 준비했다. 둘만의 멋진 저택에 클라크는 풍선을 불어 장식하고, 그녀가 오면 놀래켜줄 초장식도 꾸며놓았다.
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켜놓 양초가 타들어 가던 8시경 문을 열고 들어와야 할 그녀는 안오고 전화 벨이 울렸다.
전쟁 기금을 모으던 그녀가 그의 곁으로 오기 위해 탔던 비행기가 라스베가스 교외에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그녀를 하늘로 보낸 클라크의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 단 3년만에 끝나버렸던 상실감으로 그의 열정은 그녀와 함께 사라져버렸고 지표를 잃었던 그는 결국 전쟁중이었던 그때,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인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것도 비행기를 모는 공군에..
공군 생활 중 비행기를 몰던 그는 마라(캐롤 롬바드의 애칭)가 추락했던 라스베가스 산으로 무작정 향했다. 착륙 후, 비행기 잔해들 사이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아다녔고, 그녀의 유품 하나를 건져서 돌아왔다고 한다.
3년 군생활 후, 영화계에 복귀했지만 혼을 잃은 사람처럼 연기는 빛을 잃었고, 이후 사별한 부인과 비슷한 여인들을 찾아다니며 사랑을 하지만 역시 그 마음을 채우지 못한다. 그런 그의 마지막 사랑이 찾아왔으니, 다섯번째 부인'케이 윌리엄스'를 만났다.
'케이 윌리엄스'는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그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그의 곁에서 떠나질 않고 그를 사랑해줬다. 클라크는 그녀에게서 '캐롤 롬바드'의 대리만족을 느꼈고 '케이 윌리엄스'는 죽은 그녀의 그림자로 그의 곁에 남아주었다. 그의 사랑어린 뒷바라지로 망가져가던 그가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3년의 불꽃같은 결혼생활을 하게 해준 여인 '캐롤 롬바드' 는 '클라크 게이블'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었고,
그의 마지막까지 곁에 남았던 여인 '케이 윌리엄스'는 '클라크 게이블'의 일생을 사랑이란 이름의 그림자로 곁에 남아 주었다.
그의 일생 전부를 독차지했던 '캐롤 롬바드'가 행복할까?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케이 윌리엄스'가 행복할까?
이는 절대 비교 될 수 없을 것이다..
[번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나오고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던 해에는 인종차별이 심해서 하녀역을 맡아 열연했던 '해티 맥대니얼'이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함께 연기했던 '클라크 게이블'은 말도 안된다며, 그녀를 오지 못하게 한다면 자신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고 그 덕분에 둘 다 시상식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힘을 받아 '해티 맥대니얼'은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최초의 흑인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녀는 하녀연기의 표본이 되었고(당시에 흑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런 것 뿐이었다) 06년에는 그런 그녀를 기념하는 우표까지 생겼다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中 비비안리 와 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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